오페라 & 발레

서커스와 고난도 무용이 왜 다른지 알게해준 바리시니코프

아르미다a 2012. 5. 7. 18:59

Mikhail Baryshnikov 바리시니코프

 영화(백야)에 출연한 발레리노라기에 뭣모르고 '외모는 출중하겠으나 춤은 별로겠거니'했다.

지젤을 소재로한 영화에 그와 같이 출연한 줄리 켄트에 대해서도 그런 선입관을 가졌던 것처럼....

 

 영화 [백야] 中

 

 백야는 워낙 예전에 어릴때 나온 영화라 제대로 보지 못했고 제목만 익숙했었는데,

이것저것 찾아볼수록 바리시니코프란 이름이 빠지지않고 자꾸 나오기에 영화중 춤 장면을 찾아보았다.

아니, 웬걸.... 실황공연에 비해 영화는 반복해찍어 가장 잘된것을 편집해서 더욱 훌륭해 보인다지만

잘모르는 내가봐도 그 기량이 웬만한 유명발레단 수석무용수급 이상은 돼보였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조금 반했다.

 

지젤中마카로바&바리시니코프

 

 발레 중에 지젤이 가장 좋다는 수많은 여자들이 그러하듯이 나도 여러 발레리나 버젼의 지젤들을 찾아서보는데(그래봤자 전막을 다 본것은 10개도 안된다), 1977년 ABT판은 화질이 너무 안좋아서 포기하고 안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남자주인공이 바리시니코프라는것을 알고 보기시작했다. 화질이 안좋아서 얼굴표정도 안보이고 해서 1막만 보려고 했다(나는 종종 화질이 너무 안좋거나하면 1막만 보곤한다).

 그러나 마카로바와 바리시니코프의 훌륭함때문에 2막 까지 모두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남자주인공에게 눈을 뗄수가 없었다.  

마카로바의 환상적인 파드부레에도 바리시니코프만 보였다. 보통 나는 1막을 더 좋아함에도 여기서만은 2막이 더 좋았다.

 

  <ㅡㅡ 바리시니코프의 기량을 보시라!!

 

wowㅡ!! 초인적인 테크닉과 배우급의 연기력, 오히려 지젤보다 더 절절한 알브레히트...  최고다. 최고의 알브레히트다....!

지젤 2막을 볼때 알브레히트 마지막춤에서 항상 여러번 반복되는 앙트르샤 실력을 비교하게되는데, 로베르토 볼레가 최고였다. 하지만

바리시니코프는 앙트르샤 정도로는 시시했는지 본인수준에 맞는 그 외 여러가지 명품 동작을 통해 고난받는 알브레히트를 열연한다.

화질나쁘다고 안봤으면 어쩔뻔했을까. 오페라를 주로 조하하고 춤에 대한 심미안이 부족한 나는 평소 테크닉 위주의 발레작품은 격조높은

서커스같다고 폄하하던 사람이었는데, 바리시니코프가 무대위를 자유롭게 떠다니는걸 보고는 (정말이다, 무대위를 가볍게 날아다닌다) 

 마치 오페라에서 완벽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완벽한 고음을 들었을때처럼 가슴벅찬 희열을 느꼈다.

 20세기 오페라의 전설이 파바로티라면, 발레에는 바리시니코프가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흐음... 그렇다면 니진스키는 카루소, 누레예프는 도밍고에 대응시킬까? ^^;; )

 

 바리시니코프 덕분에 알게되었다. 서커스와 고난도 춤이 왜 다른지. ('서커스'는 내가 무시하는 뉘앙스로 사용한 단어므로 바꿔야겠다)

스포츠는 멀찍이서 와~~ 하며 인간의, 일반인의 한계를 뛰어넘은, 유연함과 힘을 성공적으로 요리해낸 것에 환호성을 지를수 있는것이고,

예술은 극속에 빠져들다못해 극자체에 동화되고 몰입되어 주체로서 전율하는 것이다. 무대위의 그 무용수와 함께 도약하고 그가 팔을 뻗을때 나 역시 동시에 갈망하는 것. 그래서 바리시니코프가 무대위에서 슬퍼할때 어느새 나는 알브레히트가 되어 울고 있었고, 그가 무대위를 떠다니면서 회전하고 도약하다 착지할때 나 역시 가뿐히 함께 내려앉으며 마치 내가 잠시 자유롭게 날았던것마냥 환희를 느낄수 있는것이다.

 전설적인 피겨퀸 미셸콴이 브누아 드라 당스를 수상한 루치아 라카라와 다른 이유다.

(나는 절대로 미셸콴보다 라카라가 뛰어난 이유라고 적지 않았다. '다르다'라고 썼다)

 

 보통 테크닉이 뛰어나면 표현력이나 연기력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바리시니코프는 어찌된것인가.

살아있는 레전드급의 기량에 연극배우급의 연기표현력을 겸비한다. 한가지 옥의 티를 "굳이" 찾자면 키가 좀 작다.

무용수는 신체조건과 외모까지 곧 실력에 해당된다. 키가 좀 작은 약점때문에 더더욱 열심히 갈고 닦았겠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리고 많이들 현역 최고의 발레리노로 꼽는 (흠잡을곳 하나없는) 볼레 역시 바리시니코프 수준은 안된다.

그러나 볼레는 키가 190이며 신체조건까지 완벽하다. 다른 얘길 하자면 볼레도 그렇고 정상급 발레리노들이 30대후반이 되가는데,

명맥을 이를 발레리노들이 참 없다고 한다. 몇년쯤 발레리노 기근이라고....

 니진스키 이후 20세기 최고의 발레리노로 누레예프와 바리시니코프를 꼽는다. 그런데 둘다 구소련에서 망명한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고국을 등진 한스러움을 예술로 다스렸을까. 볼레의 말대로 예술이 최고의 해독제니까?

 

 

 

장미의 정령 (짧은 발레작품중 가장 인기있는 레퍼토리다. 다른 발레리노와 비교해보시는것 추천~^^)

 

 

 만약 바리시니코프의 믿기지않는 '완벽 그 자체'의 기량을 보고 싶다면 돈키호테를 찾아서 보시라~!

('바질리오'가 이발사라 그런지 이 작품을 보면 모차르트와 로시니 오페라의 '피가로'가 겹쳐진다. 희극들이라 분위기와 캐릭터가 참 비슷^^)

 

 예전에 '아니, 한두번이나 돌고말지 왜 저렇게 계속 도는거야, 어지럽게....' , '가제트 형사도 아니고 점프한채로 팔다리를 꼭 저렇게 뻗쳐야해?!' 등등 몰이해한 생각을 했던 나는 ABT에서 harvey와 호흡을 맞춘 바리시니코프의 돈키호테를 보고 이해했다.

 아아,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일수 있는게 예술적 표현의 밑천이 되는구나. 극적인 효과를 높이는 강렬한 감정(넘치는 기쁨, 불타는 분노, 엄청난 카리스마 등)을 표현해내려면 더 화끈한(?) 동작(ㅡ즉, 발레에서 대사를 대신하는 무언의 언어)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바리시니코프가 미드 섹스앤더시티에선 몹쓸놈으로 나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정말 바리시니코프의 마력에 정신 못 차릴뻔했다 ^^;

 

 아아--, 당신은 정말 그야말로 왕자님이군요

 

 

 나이들어서도 멋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