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

두려움이 삶을 삼켜버려도

아르미다a 2009. 7. 5. 11:16

 

 

.....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주위에 잔잔히 퍼져있는 행복을 결코 발견해내지 못한다.

 

..... 하느님의 개입은 언제나 인간측의 절박함을 전제한다. 절박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도우심을 온전히 인정하지 못하고, 모든것을 마치 자신의 능력에 의해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되기 때문이다. 도저히 인간 자신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임을 인정했을때, 그때에 비로소 하느님의 개입은 이루어진다.

 

..... 이 세상이 내편이 아니라는 생각은 사실 '세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자신의 문제'일 수 있다. 그것은 '세상이 내편이 아닌'게 아니라, 반대로 '내가 세상편이 아니'기에 생기는 분노일 수 있다.

 

..... 최신 핵무기보다 사실 우리를 죽음과 광기로 더 몰아가던 무기는 바로 우리안에 기생하면서 우리의 인간됨을 강탈해 온 나자신의 탐욕과 악이었다는것을 .....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종말은 바로 우리자신을 파국으로 몰아넣는 내 안의 폭력과 이기심에 대한 종말임을

 

..... 폭력은 사는것에 공포를 느끼는 나약한 사람의 광기일지도 모른다.

 

..... 행복이라는 역동적 힘은 남보다 우월하다는 상대적 느낌을 통해 주어지는 '잠시의 환상'이 아니라, 자신과의 정직한 싸움을 통해 아주 힘들게 그러나 그만큼 소중하게 다가온다.

 

..... 흉터는 고통을 기억하게하고 상처를 준 타인을 여전한 분노로 소외시키게하는 회한의 표지가 아니라, 이제 그 고통과 분노의 시간은 지나갔음을, 그리고 아팠던 상처는 치유되어 더 이상 아프지않음을 알려주는 평화와 화해의 표시라는 것을.

 

..... 하느님께 성실한 태도를 지켜가는 것은 현재의 폭력적 매커니즘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묵시주의적 투쟁방식 ..... 오늘 모욕을 받고도 내일 아침 일어나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결코 서먹하지않게 시작해야하는 것은 우리누구나가 어려워하는 삶의 과제이다. 모욕을, 분노를, 공포를 견디는 힘, 그것은 이 모든 현실을 지켜보고 계시는 하느님, 역사의 주인이신 그분에 대한 단순한 고백에서부터 시작된다.

 

.....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남을 위해 때로는 상실의 고통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때문이 아닐는지.

 

..... 변할 수 없는 것들, 변화시킬수 없는 것들 앞에서 그래도 희망을 갖자고 외치는 무기력하고 고루한 호소보다 더 희망적일 수 있는것은, 내가 변하자는 태도이다. 세상은 하느님이 변화시키시고 나는 그저 하느님의 뜻에 맞추어 나를 변화시킬 뿐이라는 태도.

 

..... 대상의 실체를 잘 알았을때 나오는 것은 '숭배'가 아니라, '사랑' 아니면 '혐오' 이기 때문이다. ..... 내가 사랑하고자 하는것, 내가 마주하고 있는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채 무작정, 열광적으로 빠지고 마는 행태 ..... 그건 사랑도 아니고 열정도 아닌, 그저 단순히 날조된 '자기 중독'일 뿐이다.

 

 

 


 

 김혜윤 수녀님의 글귀들이 참 맘에 와닿는다.

[생손앓이]에 반해 찾아본 김혜윤 수녀님의 책. 제목이 멋있어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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