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새로운 해석의 루치아, 그리고 칼레야

아르미다a 2011. 6. 8. 12:04

 

 메트오페라 2010-2011 시즌의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호암아트홀에서 엊그제 만났다. 

스크린으로 최고의 공연실황을 접한다는 것에 또한번 감사하고 새삼스레 다시금 가슴벅차하면서.

 

 

 

 드세이, 흠잡기 불가능해보이는 굉장한 소프라노지만, 음색이 뭐랄까 귀를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는것 같아 많이 좋아하지않는 가수다.

 그런데 그런데, 이번 루치아에서는 연출자의 의도대로 그 해석을 완벽하게 담아냈다.

 

 이번 루치아는 좀더 리얼리티를 강조한 해석이 돋보였다.

보통 루치아는 공간과 시대만을 조금 바꾼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루치아는 가녀리고 연약한 희생물이며 이 이야기는 마냥 아름답고 순수한 그저 너무 너무 슬픈 비극적인 러브스토리였다.

 그런데 그런데, 이 작품은 달.랐.다.. 루치아의 '광기'가 유난히 강조된 해석.

그리고 루치아의 에드가르도에 대한 사랑을 순수하고 슬픈 아름다움이 아닌 광기와 혼미된 집착으로 그려냈다.

 

 1막에서는 이중창들이 아름다웠고, 2막에서는 4중창이 그리고 3막에서는 광란장면이 압권인 이 오페라.

 루치아는 3막의 광란장면에서 그저 수동적으로 부서져지고 있는 여주인공이 아니었다.

 보통 아름답고 여린 루치아가 극도의 슬픔에 휘둘려 미쳐버린 상태의 몽환적이고 그럼에도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으로 노래하는 광란의 아리아를 이번 작품에서는, 드세이를 통한 루치아에서는 다르게 만날수 있었다.

 

 드세이의 루치아는 애초에 정신병적인 소인이 있는것으로 그려졌고(1막에서 헛것을 보고 듣는묘사) 3막에서는 그 병리가 드디어 발현된다(3막에서 쓰러진 루치아에게 의사가 달려와 항정신병약 주사를 투약하는 연출).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참을수 없는 선택이 강요된 현실.

여성임에도 의지와 욕망이 있는 루치아에게는 미쳐버리는것 외에는 다른 '출구'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광기에 몸과 마음을 맡긴 루치아는 광기안에서 원하는걸 말하고 표현하고 행동에 옮기고 마음껏 발산하면서

그리고 소망대로 상황과 현재 미래를 가공하면서 눌러왔던것을 분노하면서 그동안 누릴수 없었던 어떤 자유를 갖는다.

 드세이의 15분 가까이되는 광란장면의 열연을 보면서 난 완전히 루치아에게 혼연일체된 그녀에게서 광기를 그대로 전해 느꼈다.

씻기 힘든 충격적인 공감에 낙인과도 같은 인상을 받았다. 같이 전율한다는 예술적 감흥이 이런것일까.

 

 

 그리고 새로운 위대한 테너, 거장들중 막내인(78년생) 요제프 칼레야! 20세기의 쓰리테너의 명맥을 이을 21세기 테너를 저마다 꼽지만

난 도밍고 뒤의 비야손과 파바로티 뒤의 칼레야를 주저없이 말한다. (제2의 카레라스는 아직 두근거리며 기다리고있다)

 파바로티만큼의 유려함과 그보다 나은 섬세함을 지닌 칼레야.

 

 

 이 오페라를 보면서 난 아주조금 과장해서, 호흡곤란, 현기증, 약간의 수전증이 왔다.

칼레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태양열이 지구로 복사되듯 전해진 루치아의 사실적인 광기를 만나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