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 발레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아르미다a 2009. 6. 9. 22:52

 생상스 - 삼손과 데릴라

 

 

 존 비커스와 셜리버렛이 나오는 20년도 더 된 영상물을 보았다. 본래 생상스가 오라토리오를 염두하고 작곡한것이라 그런지 합창음악이 장중하면서도 편안하니 듣기 좋다.

 

 비제의 카르멘에서 호세가 감옥에서 꽃송이를 껴안고 카르멘을 원망치 말라고 스스로에게 애써 타이르듯이, 삼손은 알면서도 데릴라를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속아주고 눈감아준다. 가톨릭신자들의 반복적인 잘못과 나름 진심어린 고해성사같은 사과가 반복되듯...

 곧 있어 또다시 그럴줄을 알기에 가슴이 더 먹먹히 답답하고 화가났겠지. 하느님은 어떻게 인간을 그리 반복적으로 용서하시고 그 반복적인 회개를 참아내시는걸까. 이 답은 하루이틀이면 알게된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미소와 자태를 바라보며 같이 있고 싶으니까.

 아담이 그랬을까, 선악과를 준 이브를 증오하기보다는 불쌍히 여겼을까. 어린왕자가 까탈스럽게 심술을 부리는 장미를 사랑하듯.

 

 데릴라는 어떻게 아름다웠을까. 재크와 콩나무에서 콩나무줄기가 말도 안되게 구름도 뚫고 올라가듯이 나의 상상력을 뻗어 그려본다.

 작고 건강하게 밝은 나무색빛이 도는 까무잡잡한 피부빛을 지녔겠지. 눈꼬리가 약간 째진듯 올라간게 개성있게 귀여웠을까. 백인들의 쌍커풀에 커다란 인형같은 선한 눈매는 아니었을테지만, 또렷한 눈매속에 커피색의 홍채가 선명한 눈동자가 담겨있어 삼손은 그 눈을 계속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것같다.

 

 데릴라와의 첫키스, 콩다방의 휘핑크림을 얹은 카라멜마끼아또 같았을까. 입술이 닿으며 뜬구름같은 부드러움을 채 느끼기도 전에 더 깊이만나고 그 녹아드는 달콤함에 아찔했을까. 아리아의 가사처럼 데릴라의 달콤한 혀놀림에 삼손은 뱀에게 휘감긴듯 사로잡혔던것이다. 삼손은 겁없는 철없는 피노키오처럼 그렇게 거기까지 다다른것이다.

 

 이 작품안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열리고'. "새벽에 꽃봉오리가 열리듯 내 마음을 열어달라"는 저리도 치명적인 노래에 결국 삼손은 머리카락을 내주었을것이다. 토라져 돌려보린 고개, 머리칼 밑으로 보이는 부드럽고 고운 슬픈 목덜미가 애처로와 비밀을 털어봐버렸나.

 데릴라는 유대인의 신에 빠져 자신을 버릴지도 모르는 삼손이 밉고 그 신이 미웠던것이다. 삼손을 사랑하지만 두려워서 그를 파멸로 내몬것이다.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이 아리아를 들으면 삼손이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임을 느낄수있다. 높지않은 음역의 빠르지않은 그 메조소프라노노실가 가슴 아래부분에서부터 삼손을 원한다는걸, 그 간절함이 전해진다. 삼손을 사랑했으나 종족에 충성하기 위해 사랑을 포기한게 아니다.

 데릴라는 종족에 충성하는 따위에 어느 의무감에 묶일 여자는 아니니까. 마치 살로메처럼 삼손을 욕망한것이다.

 

  삼손이 부드럽고 나직하게 "달릴라..."하고 이름을 불러주는게 취할듯 달콤했겠지. 따뜻한 음성이 그녀를 달릴라이게 함을 느끼면서.

 그리고 삼손의 이름을 낭랑히 부르는게 참 좋았을것이다. 제 입술이 열리면서 내보내는 그 음성이 삼손을 휩싸며 '내남자'라는 옷을 입히는 기분.

 나직하고 빠르지 않은 삼손의 목소리는 따스하고 부드러웠을것이다. 미풍에 나뭇잎이 움직이듯 달릴라의 마음을 툭-툭-흔들었겠지. 그리고 리골레토에 나오는 caro nome 아리아처럼 삼손, 그 이름만 생각해도 달릴라는 두근거렸을터.

 

 어쩌면 투란도트의 공주의 그것같은 얼음같은 데릴라의 마음을 삼손이 그렇게 부드럽게 열었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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