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연출의 '토스카'

 예전에 동영상으로 토스카를 봤을땐, 지루한 오페라구나 하고 느꼈다. 유려한 아리아도 별로 없고 내용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작년이맘때 피치연출의 아이다를 보았었기에,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피치의 훌륭한 무대연출을 기대하면서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이번에 공연된 토스카를 보면서 점점 느낀건 토스카의 주인공은 토스카도 카바라도시도 아닌 스카르피아라는 것이다. 마치 일트로바토레의 주인공이 만리코도 레오노라도 아닌 아주체나 인것처럼.

 

 

 작년 아이다에서 아이다의 아버지역할을 맡았던 훤칠한 키의 클라우디오 스구라가 스카르피아 역을 맡았다. 매력적인 음색이다. 안정적이고 그 깊이있는 소리가 흡인력있는 스구라. 참 감미롭고 신사적인 목소리인데도 악역에 적절했다. 스카르피아의 이중적인 위선자의 면모를 탁월히 그렸다.

 특히 '테데움'의 합창이 나오는 장면은 적어도 나에겐 이 오페라의 백미였다. 토스카의 대표적인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 이나 '사랑에 살고 노래에 살고' 보다도 훨씬 인상적인. 이렇게 멋지고 웅대한 합창장면은 베르디만의 특기가 아니었는지 푸치니에게도 가능하다는게 새삼스러웠다. 예술이 가진 이중성을 잘 그려낸다. 발레리나의 발가락이나 벨칸토 소프라노의 성대에서와 같이 예술은 아름다움과 동시에 고통이 수반되는것처럼 성스러움과 사악함의 이중성을 지닌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뚜릿두와 산투자의 비극이 부활절에 벌어지는것, 스카르피아의 소름끼치는 대사들이 테데움에 맞추어 읊조려 지는것.... 예술은 그 자체의 모순과 비극에서 진정한 속씻김을 선사하는것일지도 모르겠다.

 

 토스카역의 올가페리에 역시 감동적이었다. 토스카역에 지나치리만큼 흠뻑 빠져있는걸 객석에서 그대로 느낄수 있었다.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부를땐 같은 작곡가인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어느 갠날'이 겹쳐졌다. 다른 내용이지만 하염없이 절박한 여주인공의 심정을 호소하듯 제대로 표현한 아리아 이기때문인가.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여주인공이 혹독한 선택을 앞에두고 주님을 원망하는 대목이다. 나쁜일 한것없이 깊은 신심을 가지고 그렇게 예술과 사랑에 힘쓰며 살았을 뿐인데 돌아오는 결과가 왜 이렇냐고 절망하는... 나는 반대로 그렇게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수있다면 훗날 치르는 대가가 아무리 가혹하더라도 그 순수한 행복에 비용을 지불할만 하지 않을까 싶었다. 특히 예술에서 느끼는 순수한 기쁨, 상대방에대한 기대나 미래에 채워질 욕심따위가 아닌 그 자체의 기쁨.

 

 카바라도시 역을 맡은 단신의 자비에 팔라시오스는 못내 아쉬웠다. 다른 캐스팅인 잔카를로 몬살베 출연의 공연을 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들었다. 공연내내 그 생생한 표정이 살아있는 상대역의 토스카에 비해 카바라도시는 연기가 겉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리아에 실리는 감정도 상당히 밋밋했다. 노래하는 스타일은 어딘지 모르게 호세 카레라스를 닮았지만 안타깝게도 카레라스의 그 섬세한, 여심을 사로잡는 강점대신 힘이 다소 부족하다는 단점만을 닮았다고 할까. 성량이나 호흡이 별달리 부족한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절도와 힘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친구와 신념을 위해 고문도 감내하는 열정을 표현하지도 화가로서의 섬세함도 느낄수 없었다. 이태리 배우에게서 기대함직한 연기와 노래가 아닌 감흥없는 밋밋함에 아쉬웠다.

 

 국립오페라단이나 서울시립오페라단의 오페라들도 성악적으로 훌륭하다고 느껴지지만 외국의 제작진이나 출연진이 가세한 내한공연 오페라는 또 그 색다른 매력이 있어서 참 좋다. 훨씬 비싼 공연티켓값에도 놓칠수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케일이 좀더 크고 생경한 무대연출, 내성적인 한국정서와 다른 외국 배우들의 자연스럽게 크고 굵은 연기, 그리고 뭔가 오케스트라와 더 일치를 이루는듯한 느낌.

 오케스트라는 지난 3월에 본 두편의 내한공연 오페라와 달리 이번엔 한국지휘자였다. 지난 3월에도 지휘자만 외국인이었지 오케스트라는 국산(?)이었는데도 상당히 달랐다. 편견때문이었을까. 2막 앞부분에서 플룻소리가 좀 거슬리가 튀었고 전체적으로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부실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