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환상적 군무와 메차보체 - 노르마

아르미다a 2009. 6. 28. 22:11

 아, 내가 예술의전당보다 세종문화회관을 좋아하는 이유는 비단 서울시립오페라단이 국립오페라단보다 젊고 훌륭한 실력이라는 한가지 이유만은 아니다.

 지난 3월 피가로의 결혼을 보면서도 불편했던점인데, 새로 개관한 오페라하우스는 자막을 보기가 너무 불편하다. 3,4층 관객을 배려함인지 꼭대기에 매달려있어서 고개도 아프고 집중이 안된다. 다행히 잘 아는 내용이라 자막에 의존하지않긴 했지만... 세종문화회관은 의자마다 자막스크린이 있는데...

 

 오페라 공연을 보러와서 기대치않은 현대무용인 발레를 선물받는다. 요즘의 트렌드일까. 서곡에 맞추어 건장한 남자무용수들이 춤이 본격적인 시작도 전에 관객을 앞도했다.

 서곡때 외에도 긴 독백아리아나 간주곡들이 나올때 건장한 무용수들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군무가 흡족하기 이를때가 없었다. 역시, 오페라는 종합예술이야.

 

 

 

 한복을 연상시키는 의상이 눈에 띄었다. 노르마의 아이들은 개량한복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여주인공들은 뭐랄까 퓨전국악연주자들이 입을법한 저고리가 없는 한복치마 같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어색하지않고 참 아름다웠다.

 

 음악과 내용에 탁월히 어울리는 춤 외에도 합창이 너무나 멋졌다. 벨리니가 오래 살았다면 진실로 베르디에 못지 않았을텐데 ㅡ 하는 생각이들만큼 베르디 수준의 멋진 합창이 많이 나왔다. 특히 2막2장의 남성 합창이 너무나 멋졌다.

 

 카자흐스탄에서 왔다는 오케스트라의 음악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강약과 셈여림을 주무르는 절묘함이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선율에서 빛났다. 외국연출에 외국지휘에 외국오케스트라. 조금씩 색다른 맛이 즐겁다.

 

 예전에 노르마를 동영상으로 감상할때 다른 오페라에 비해 아리아들이 죄다 너무나 고음일색이라 프리마돈나를 잡는 오페라구나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웬만하면 공연못하겠구나 했다.

 그런데 올해 국립오페라단이 한다는 공연소식에 놀랐다. 잘하려나하는 노파심도 조금... 국내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해외활동중인 한국성악가를 초빙해 다행히 잘 올린것같다.

 

 내가 본것은 박현주, 이정원 캐스팅의 공연이었는데 폴리오네 역은 조금 실망했다. 성량이 크고 우렁찬것은 기가막혔으나 특별한 감흥을 느낄수없었다. 테너의 탓이 아니라 폴리오네가 워낙 밋밋한 캐릭터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노르마에서 폴리오네가 좀더 입체적인 캐릭터로 연출된걸 기대하게 된다.

 차라리 노르마 아버지의 아리아에서 진정성과 감동을 느낄수 있었다. 로마를 미워하는 마음, 딸에게 분노하며 슬퍼하는 마음 등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감동적인 오로베조가 남자주인공처럼 느껴졌다.

 

 감정에 몰입이 잘되 보이는건 여자들도 마찬가지여서 아달지자가 노르마보다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했다.

 2막1장에서 노르마와 아달지자가 화해하며 부르는 2중창은 더없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오페라의 꽃의 이중창이나 편지이중창이 선율이 곱고 아름답다면, 이 2중창은 너무 감동적이며 짠하다.

 폴리오네가 아달지자에게 떠나자며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보다도 이 장면에서의 소통되는 사랑과 신뢰의 감정이 훨씬 깊이 느껴졌다.

 

 노르마. 소프라노 박현주. 그 성악적 뛰어남에 감탄했다. 메차보체라고 하던가. 고음을 부를땐 아무래도 소리가 커지고 사나워지기 쉽상인데 프로답게 고음을 낼뿐만 아니라 성량조절과 음을 끄는것에도 뛰어났다. 몽셰라 카바예의 특기라던 메차보체. 소프라노 박현주에게 기립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내용적으로 노르마를 이해하기가 힘들긴하다. 아달지자는 워낙 사랑하고 아끼는 후배이며 몰랐으니 용서가능하다해도, 그렇게 깊이 희생하며 신뢰를 회복할만큼 돈독한 관계를 다짐하며 결국 그녀를 위해 대신 죽어줄수 있는건지. 그리고 집착과 분노를 반복하던 대상인 폴리오네를 결국 그렇게 쉽게 - 망설임과 짧은 갈등 정도로 - 용서할수있는건지....

'공연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나라속 사랑의 묘약  (0) 2009.09.28
훔퍼딩크의 헨젤과 그레텔  (0) 2009.09.21
조정현 지휘 - 세빌리아의 이발사  (0) 2009.06.27
피치 연출의 '토스카'  (0) 2009.06.09
trieste내한 '나비부인'   (0) 2009.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