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trieste내한 '나비부인'

아르미다a 2009. 6. 9. 22:31

 

 작년에 피치연출의 아이다를 보긴했지만 이번 뜨리에스떼 내한공연은 더욱 국내색이 묻지않은 오페라의 본고장 이태리공연이라 기대가컸다. 결론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행복한 공연이었다는거~

 

 지휘자 프라타니. 이제껏 본 오페라중 지휘자의 존재감이 가장 컸던 오페라였다. 오케스트라 피트석이 좀 높아서 더 그랬는데, 내 자리는 맨 앞줄 지휘자 바로 등뒤였는데, 춤추는듯한 율동적인 그의 지휘덕에 그의 진한 향수냄새가 날 정도였다.

 왼쪽에 앉은 부부는 지휘자가 시야를 가리는것과 지휘할때 소리를 내는걸 거북해했다. 지휘자가 얼마나 음악에 빠져드는지 '으으음음' 이러면서 특히 현악기들의 선율을 자주 따라소리를 냈다. 한국의 낯선 오케스트라를 끌고가기 위해서 본인도 모르게 그러는건지 원래 그런 지휘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지휘자는 이태리사람다운듯한 분위기를 많이 풍겼다. 열정적이고 밝은 표정. 관악기쪽을 보면서는 종종 미소와 함께 지휘봉을 휘둘렀다. 지휘하는 팔과 손이 머리한참위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고 클라이막스에서는 '으으음...' 이런 소리와 함께 불끈 쥔 왼쪽주먹을 함께 힘주어 올렸다. 어쩌면 저렇게 자기일을 사랑하고 즐.겁.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지휘하는 음악과 혼연일체가 되어 몰입된 그의 춤추는 듯한 동작들이 오페라무대의 시야를 가려도 거슬리지 않았다.

 

 아리아만큼, 아니 어쩌면 아리아들보다도 대사가 없는 오케스트라 배경음악들이 더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나비부인의 심정과 극의 상황들을 살속까지 느껴지게 하는 푸치니의 감성적인 작곡능력이라니..!!

 

 나비부인이나 핑커톤보다 스즈키의 무게감이 더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샤플레스의 노랫소리가 너무 좋았다. Rumetz라는 바리톤. 어쩌면 그렇게 부드럽고 그윽한 따뜻한 음색을 지녔는지!!!! 따뜻한 배려심과 동정심을 지닌 유일한 인간적인 남자캐릭터라는 배역에 잘 맞았다. 핑커톤과 중창을 부르는 장면에서도 샤플레스쪽으로 눈과 귀가 쏠렸다. 베이스만큼의 깊이가 느껴지는 음색(그러나 전혀 무겁지는 않은). 가장 좋았던 배역이었다.

 

 자막으로 나오는 여주인공의 아리아대사를 읽고 들으면서 우리의 나비, 쵸쵸상의 심정은 어떤 걸까 하는 감상이 줄곧 들었다.

 집안이 기울어 게이샤를 하게된게 끔찍히도 싫었던 나비. 미국인과 결혼한다는 미지의 그 운명선이 탈출구가 될것으로 굳게 믿었다. 미지의 운명이기에 더욱더 환상의 나래를 펴고 허상이라는 윤곽이 드러남에도 놓을수가 없었다.

 철저히 '게이샤로 전락한 일본소녀'의 애벌레에서 탈피하기위해 그녀는 종교도 바꿨으며, '마담 버터플라이' 라고 불릴때마다 꼬박꼬박 '마담 핑커톤'이라고 맞받아쳤다.

 

 본인의 영리한 이성이 자아에게 핑커톤에게 버림받았음을 일깨워주지 못하도록 그녀는 '어느멋진날'의 가상시나리오를 다짐하듯이 불렀으며, 샤플레스 영사가 편지내용을 전해주러왔을때도 그 편지내용을 선고받기를 유예하기 위해 질질 끌었다. 가련하게도 '마치 돌아오지않을것처럼 방문을 잠그고 간' 까닭을, 환상에 끼어맞출수있는 다른 이유를 찾아내려고 억지를 썼고, 미국의 울새는 3년이나 늦게 집을 짓는다고 확인하고 싶어했다.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부자 야마도리와의 항로변경은 안중에도 없었다. 야마도리에 대해 판단할때는 그녀의 영민한 이성-억지로 억압하고 있는-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놔둔거지. 환상을 충족시키기엔 너무나 뻔히 보이는 생활이었으므로.

 

 듣고싶지않았으나 결국, 샤플레스에게 설마하던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최악의 시나리오 그림자를 받았을때 발버둥을 친다. 본인이 결혼한 남자의 세상은 여자를 함부로 버리는 일본과는 다르다고. 미국의 법을 '우리나라'의 법이라고 강조하며 자신을 불행한 결말에서부터 보호해 줄것이라고 마지막 지푸라기까지 느슨히 잡지않는다.

 그렇게 죽을 각오로 스스로 그려놓은 밑그림대로 되기를 억지스럽게, 가엾은 발버둥을치며 고집했기에 그녀는 샤플레스의 질문에 망설임이나 고민없이 바로 대답한다.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죽음뿐이라고. 

 

 그녀가, 나비가 너무 슬프다. 죽어서 슬픈게 아니라, 번데기를 벗지못한 본인의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수없는, 오직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나비라고 그렇게 판단력을 묶어놓고 스스로에게 헛된 소망을 폭력적으로 강요할수밖에 없었던, 그런 병든 희망에 집착을 품은 그 처지가 처절히 애달프다.

 

 씁쓸한 비극을 아름답게 그려낸 푸치니덕에 던킨도너츠의 12곡라떼를 손에 들고 집에가는 차를 타기위해 걷는 발걸음이 더없이 행복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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