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피가로의 결혼, 신영옥

아르미다a 2009. 6. 9. 22:30

 

 코벤트 가든 연출의, 신영옥 출연의 피가로의 결혼을 보았다. 이제껏 본 공연 중 극이 끝나고 관객의 박수와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공연이었다. 쟁쟁한 연출과 출연진 덕에 수준높은 공연을 맛본것같아 흡족하다.

 

 이온 마린이라는 지휘자, 팔동작이 크고 동적인 지휘를 하는데 은빛이 섞인 어두운 머리칼이 윤을 내며 흔들거린다. 그 뒷모습의 카리스마가 어찌나 멋진지. 4막에서 신영옥의 어느 아리아가 끝나고 왼손으로 지휘봉을든 오른손등을 두드리며 신영옥에게 갈채를 보내주는 자상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다른 작곡가에 비해 유난히 오케스트라의 음악에 귀를 더 귀울이게 되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지휘자의 능력이었을까, 살아있는 음악을 듣는 기분이 들었다.

 

 피가로 역을 맡은 조르지오 카오두로, 내 또래의 이태리 청년이다. 뉘집아들인데 그렇게 잘생겼단 말이더냐.....! 조금 촐랑거릴 듯한 느낌의 피가로역에는 목소리가 무게감이 좀 있나 싶더니만 들을 수록 감미로운, 은근히 달콤한 음색이다. '더 이상 날지못하리' 를 부를때 프레이즈 첫부분 마다 악센트를 꾹꾹 넣어주는 스타일에 익숙했는데, 그는 그의 목소리만큼 부드럽게 불렀다. 아쉽기보다는 완전히 다른 버젼의 '더 이상 날지못하리' 를 만나는 기분. 헤르만 프라이의 피가로에 너무 젖어있었던듯.

 

 무대 연출과 의상들이 참 영국스러웠다. 영국영화를 보면 느껴지는 그런 느낌들. 가구들이며 무대위 구성이 어느 영국에서 만든 '피가로의 결혼' 영상물 속과 어찌 그리 흡사한지. 자연광 느낌의 조명연출이 너무 편안해서 좋았다. 백작부인역을 맡은 자크비악은 커다란 보조개가 풍부한 표정을 더 예쁘게 보이게 했다.

 

 신영옥은... 나는 너무 과장된 조수미보다는 신영옥의 노래를 훨씬 좋아하지만, 사실 이 공연을 예매할때부터 좀 꺼림직했다. 50이 다 된 소프라노...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아주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맑고 청아했다. 게다가 연기력이 얼마나 출중한지 오페라'가수'라 불러야할지 오페라'배우'라 불러야할지...! 어찌 다쳤는지 모르지만 팔과 손가락에 하얀 깁스를 하고 열연을 하는데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들뻘되는 피가로와 내세워도 자연스런 커플같은것이 뛰어난 연기와 빼어난 음악이 20년정도는 우습게 감싸는구나 싶었다.

 

 보통 메조소프라노가 맡는 케루비노역. 카운터테너 이동규가 맡았다.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의 목소리에 반했던적이 있긴 하지만, 이동규는 미소년을 연기하기엔 너무 건장한 청년인것 같기도 하고, 오페라에서 인위적인 남자의 고음 소리라니... 내 취향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실력은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빈틈없이 조화로워 제대로 못하면 너무 표시가 많이난다는 둥 그런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어설픈 공연을 보면 실망한다고... 코벤트가든 연출진의 피가로의 결혼은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참 잘 만든것같아 행복한 관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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