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현대예술 같았던 '살로메'

아르미다a 2009. 6. 9. 22:28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한국에서의 오페라는 인기가 높지 않은 편이라 흥행이 보장된 열몇개정도의 작품들 위주로 돌아가면서 공연된단다. 하긴 예전엔 외국어 아리아를 자막없이 배경지식으로 알고있는 줄거리를 추측해 감상해야했으니 더했겠다.

 뭐 우리예술수준이 높아졌는지 자막덕분에 오페라인기가 높아졌는지 우리나라에서 하리라고 기대하지않았던 작품인 살로메의 공연소식을 알자마자 흥분하며 예매를 했다.

 

 

 현대미술이건, 현대음악이건 난 난해한 예술성을 떠나서 그냥 예쁜게 좋은데... '살로메'가 거기에 속한다는건 몰.랐.다... 그냥 그 유명한 세례요한의 이야기라는것과 일곱베일의 요염한 춤이 유명해서 외국에서는 예술성이 높은 작품가운데서도 자주 공연되는 편이라는거. 집에와서 살로메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니 나오는 단어는 "엽기" "충격" "새로움" "실험정신" 뭐 이런말과 함께 평론가의 칭찬(격찬?)들. 어쨌든 오페라를 좋아한 덕분에 아니었으면 편식하며 쳐다보지도 않았을 현대예술구경을 했다. ^^

 

 가장 먼저 특이했던것은 1,2,3,4 막 이렇게 되있지 않고 단막이었다는거. 그래서 쉬는시간없이 110분동안 짧게 공연되었다. 내가 오페라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인 아름다운 아리아, 특히 이중창 삼중창들이 거의 없이 상당부분 살로메의 독창으로 극이 이어졌다. 아리아의 비중자체가 적었던것 같다. 따라서 오페라의 또 한가지 매력인 중간중간 마음껏 박수를 칠 기회가 없었다.

 어쨌든 겨우 110분의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초보이며 평범한 수준의 나에게는 상당한 인내심을 갖고 공연의 흐름을 지켜봤다. 그나마 아름다울 "일곱베일의 춤"이라도 기대하면서. 어느 외국에서처럼 진짜 누드까지는 아니어도 지난번에 본 '카르멘'에서 정도의 섹시하고 아름다운 여주인공의 안무를 기대했는데.

 극의 다른부분과 마찬가지로 그 부분역시 전위예술의 느낌이 나는 방식으로 채워버리곤 넘어가 버렸다. (내가 느끼기에 주관적으로)지리한 그 부분이 겨우 지나가고 이어지는 헤롯의 대사 "바로 그거야, 멋진 춤이야" 뭐 이런 대사가 얼마나 황당하게 느껴지던지!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거의 초연이나 다름없는 작품이었기 때문인지 국립오페라단공연이었지만 조명,무대 등 연출은 죄다 외국인이 맡았다. '빨간팬티'소동으로 남자주인공역시 우리가수가 아닌 독일성악가가 맡았다. 봄에 봤던 피치가 연출한 오페라 '아이다'와 무대 느낌이 조금 비슷한듯 했다. 단순한 색깔로 모던하게 연출한 무대. 흑백과 원색의 빨강정도. 팜므파탈이 강조되는 외설적인 성격을 싹 빼버리고 철학적인 느낌이 나는 전위예술적인 그런 느낌으로 대체된듯하다.

 R 슈트라우스의 음악(물론 내가 좋아하는 예쁜 선율은 아니지만)에도 이 오페라는 철학적인 느낌이 훨씬더 어울린다. 연출을 참 잘했다. 혼돈과 광기라는 주제가 부각되는 안무와 의상들이었다.

 낯설다는 이유로 러시아오페라에 관심이 안갔고, 철학적이고 무겁다는 이유로 바그너오페라는 볼 엄두가 안났었는데, 이 오페라를 보고나니 기회가 되면 한번은 보러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LG아트센터의 공간부족으로 오케스트라규모를 줄였다는데도 성악가들의 목소리가 오케스트라음악에 묻혀 잘 안들리고(내가 맨앞줄에 앉아서 그런건지) 그 독일 성악가의 노래소리가 두어번 갈라지는등(하지만 그 독일사람 연기는 정말 최고였다) 앉아있는시간내내 즐겁운 공연은 아니었지만 끝나고 나니 오히려 더 여운이 남고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자꾸만 생각이 나는... 아리아 없이 이어지는 뭔가 난해한 듯한 안무속에 너무나 꼭 어우러지는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들으며 어떠한 철학적인 메세지를 깊이 느껴야할것같은 중압감이 드는 공연이었다.

 공연이 다 끝나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어떤 느낌.. 좀더 대중적인 다른 오페라들보다 이 오페라가 훨씬더 현실적이다. 현대(근대?)음악이 그런건가. 이 작품에선 극단적으로 과장을 해서 그렇지 가면안에 살짝 숨어있는 인간내면의 집착과 광기를 어쩜 그리 적나라하게 으로 표현을 했는지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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