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조정현 지휘 - 세빌리아의 이발사

아르미다a 2009. 6. 27. 00:59

 로시니의 속사포같은 바소부포. 흡사 랩을 듣는것 같다. 로시니의 바소부포를 한국 성악가들이 잘 하려나? 하던 의문은 그야말로 황당한 기우였다. 로시니 특유의 중창들... 호들갑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인 중창들은 정말 너무나 앙상블스럽다. 계단을 종종종종 발이 안보이도록 빠르게 오르내리는것같은 리듬이 특징인 아리아들.

 이태리 오페라 부파, 모차르트와 로시니가 비슷한 붙위기 같지만, 피가로의 결혼과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비슷한듯 같지만 확실히 로시니의 그것이 모차르트보다 한결 발랄하며 자유롭다. 앙상블 오페라, 2중창에서 3중창으로... 점점점 6중창에서 이윽고 합창으로까지 가게하는 마치 오르가즘에 도달하는 느낌이라면 과장일까.

 
 세종 M씨어터에서 공연했다. 신났다. 대극장보다는 중극장이 참 좋다. 아무리 맨앞줄에 앉아도 대극장에서는 오케스트라와 무대와의 물리적 거리가 중극장보다 훨씬 멀고, 대극장에서는 맨 앞에 앉으면 무대를 올려다봐야하니까.

 

 

 아, 지휘자. 너무 어려보여서 놀랬다. '살인미소'배우 김재원을 닮은 옆얼굴. '실제론 어리지 않은데 어려보이는 동안의 얼굴이겠지?' 이러면서 의아해했으나, 막이 끝날때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허리숙여 꾸벅꾸벅 인사하는 지휘자의 모습에서 어려보이는게 아니라 진짜 어린 지휘자라는걸 확인했다.
 집에와서 찾아보니 28살? 29살? 이란다. 한국 최연소 오케스트라 지휘자. 그럼에도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너무너무 빛났던 공연이었다. 지난봄 내한공연에서의 외국지휘자의 근사하며 흡족했던 그것보다 멋졌다(적어도 비슷했다).
 그가 빚어내는 음악도 그의 움직임도 왠지 천재같았다. 뒷모습과 옆모습에서 강마에의 순수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러나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깍듯이 모시며 휘어잡는 부드러운 힘. 지휘봉의 흔들리는 선단에서 끊임없이 아름다운 콩나물들이 흘러나오는듯 했다.
 
 객원 합창단. 작년 돈 카를로 공연때의 그 객원 합창단이었다. 이번에도 오페라를 풍성히 빛내준다. 백작의 사주로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 오케스트라를 똑같이 재현하듯 가짜 바이올린 활을 켜는 동작, 관악기를 부는 동작이 실제 음악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세상에... 얼마나 연습했을까.
 
 오프닝때 서곡에 맞추어 발레가 선보였다. 신선했다. 로지나를 묘사하는 듯한 발레리나. 수줍은듯, 설레이는듯, 실망한듯, 행복한듯 감정의 변화를 서곡에 맞추어 몸짓과 표정에 담아낸 연출이 탁월하다.
 
 알마비바 백작의 테너 강신모. 신현준을 닮은 외모의 남유럽사람같은 이국적인 외모. 귀족분위기의 음색. 성량이 크지 않았음에도 시원한 목소리였다. 동영상으로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볼때 귀기울이지 않고 들었던 백작의 아리아들에 집중하게 만들더라.
 
 로지나의 소프라노 강혜정. 작년 돈지오반니에서 체를리나 역할을 하는것을 보고 내가 반해버린 사랑스러운 목소리의 그녀. 그녀의 첫곡 'una voce poco fa' 는 조금 실망스러웠으나 두번째 곡부터는 목소리가 풀렸는지 문안했다. 체를리나나 로지나처럼 사랑스럽고 통통튀는 아가씨역이 참 잘어울린다.
 
 피가로의 바리톤 공병우. 헤르만 프라이가 고정시켜버린 피가로의 이미지와는 달랐지만 피가로에 분명 어울린다. 능청스럽게 귀여운. 그러나 자신감이 넘치고 남자다운. 첫곡 'largo al factotum' 에서 좀더 촐싹 맞기를 기대했지만 그의 음색과 발성에는 오히려 덜 촐싹맞은게 어울렸다.
 
 바르톨로의 바리톤 최희윤!! 어마, 이렇게 귀여운 악역으로 바르톨로를 재탄생 시키다니!! 바르톨로는 능글맞고 王비호감의 욕심쟁이 캐릭터였는데. 이런 오페라 부파에는 미워할수없는 악역이 더 어울리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느끼게 해주었다. 편지지가 왜 5장이어야하는데 한장 모자라느냐고 피곤하게 구는것까지 귀엽더라.. ^^
 
 바르톨로는 바질리오의 베이스 최웅조와 참 쿵짝이 잘 맞았다. 베이스는 이렇게 성량이 커야 멋있다. 'la calunnia e un venticello' 를 포함해 로시니의 바소부포역을 잘 해낸것같다.
 
 
 아, 공연을 본 후 세종문화회관 계단을 내려오는데 행복한 여운 덕분에 찌그러진 맥주캔 두개가 계단에 버려져 있는것조차 그리 거슬리지 않았다.

 즐거움이 자꾸 솟아나 지하철로 향하며 미소가 얼굴에 떠오르려는걸 계속 자제해야했다. 이렇게 만족스러운 오페라 공연을 보고나면 뜬구름을 잡듯, 연애초기에 설레이듯 달콤하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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