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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컨] 19세기 문화사 시리즈

아르미다a 2012. 2. 8. 14:51

보통 역사에서의 19세기라 함은 1789년~1914년 즉, 프랑스혁명에서 세계대전까지를 말한다.

 

 

 

 스티븐 컨이 지은 19세기를 심도있게 조망한 세권의 책이 있다. 

빅토리아시대 이전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단지 세계사로서의 지식이 아닌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좀더 엿볼수 있는 문화사를 알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문학과 예술의 문화사]의 경우 빅토리아 시대의 회화, 문학을 중점으로 살펴봤는데, 원제인 [Eyes of love]에서 알수있듯이 사랑하는 남녀사이의 시선만을 다룬 내용이 이렇게 두꺼운, 그리고 참 지루했던 책이다.

 개요는 사랑은 상대방의 아름다운 눈을 만나며 시작, 발전되며, 사랑하는 남녀의 시선의 구도는 언제나 남자는 여성쪽으로 몸을 향하고 열렬히 바라보나, 여성은 남성에게서 조금 몸을 돌린채 조신하게 눈을 내리깔고 바닥을 보고 있다는 것. 그래서 다 읽고 난 후에 조금 허무했다. '그래서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랑의 문화사]를 보고 저자가 "시선"을 가지고 한권의 책을 왜 집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 이후 영문학을 꽃피울수 있었던 19세기, 많은 문학작품의 주제가 된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서 시선은 사랑의 모티브이자 욕망이자 그 자체로 힘과 의지였다. 시인 예이츠가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고 노래했듯이 말이다.

 

 [문학과 예술의 문화사],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를 먼저 읽은덕에 [사랑의 문화사]를 더 잘 이해할수 있었다. [사랑의 문화사]에서는 19세기후반과 20세기전반의 로맨스와 여성 및 사랑의 경험에 부여된 제약의 변화를 조망한다. 문학과 회화에서 묘사된 실례와 철학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상세히 그리고 조금 지루하게 설명해가면서. 우리에겐 일제치하 전후의 여성의 사회적 변화와 대응되려나. 하이데거의 실존철학(본래적인것과 비본래적인것의 대비)를 내용에 적절히 넣은것이 흥미로웠으나 소주제들의 내용이 결국은 비슷비슷했다. 결론은  결국 사랑의 영역범위가 이런 저런 식으로 확장되었다는것, 그리고 19세기의 사랑보다 20세기의 사랑이 더욱 본래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과연 20세기의 사랑이 비교적 비본래성에서 벗어났는가에 대해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씁쓸함이 남았다. (스티븐컨의 책을 세권다 읽으면 겹치는 관점이 꽤 많다. 그의 방대한 지식은 그럼에도 훌륭하고 대단하다.)

 

 어쨌든 모두 훌륭하지만 가장 훌륭한 책, 21세기의 지금 나를 둘러싼 이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뿌리가 되는 밑바탕을 파악하고 싶은 지적인 호기심을 달래준 책은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이다. 로맨스가 주가된 앞의 두 책과는 자못 그 색채가 다르다.

 처음엔 건축관련책인가 했다.

 저자의 상당한 박식함이 돋보이는 책이다. 철학과 미술과 음악과 역사와 과학 등, 그러나 온갖 분야를 늘어놓는 탓에 내용전개가 다소 산만했는데, 특히 책의 전반부가 그러했다.

 1880-1919년 까지라는데서 미리 눈치챌수 있듯이 앞선 전개내용들이 결국 유럽대전(차후 1차세계대전이라 명명된)이라는 결과로 통합된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러 야기된 시공간에 대한 개념의 변화가 유럽대전 발발의 큰 몫을 한다고 주장한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특히, 마지막 2~3장에서는 유럽의 역사와 지리적 배경지식이 상당히 필요했다.

 책을 읽다가 문득, 1848년 유럽 곳곳에서 혁명의 봇물이 터졌던 역사(공산주의의 유령)가 작년 2011년 중동 곳곳에서 민주화를 위한 투쟁(SNS의 유령)과 오버랩되었다. 모두 경기침체, 식량가격 상승 원인이었다지. 빵과 자유를 위한 외침은 힘이 세다.

 

 여기서 다루는 빅토리아 시대 후반부에는 말그대로 홍수같은 새 문명기기, 과학으로 상당한 혼란(어쩌면 지금은 그 변화속도가 더 빠를지도 모르지만 현대인은 이미 그 가속도에 익숙해 무감각하다)스러웠고, 세기말과 맞물린 이 과도기적 혼란은 당시의 철학과 예술을 흔든다. 하지만 달라진 시공간에 적응하기는 커녕 아직 '계급'타파 조차 안착되지 못한 시대상을 엿볼수 있다.

 물론 역사의 어느 부분에나 대변혁은 있어왔지만, 19세기의 그것은 전례없는 격변이었다고 설명한다.

 전통의 상실과 비인간화에 대한 (21세기에 비하면 훨씬더)예민한 감수성이 전쟁전 아직은 살아있는 19세기를 만날수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시간의 극복, 과거를 불러냄, 동시성의 실현은 마치 중력의 극복쯤 되는듯 19세기 지식인들이 받아들였으나 20세기, 21세기에도 역시 진행되고 있고, 책의 해당내용들이 그대로 현대에도 대입된다는 것에 아쉬웠다. 19세기말 과학급진 전에도 사진이 없을땐 그림으로, 녹취 대신 문서로 과거를 잡아둘수 있었는데 과연 '과거'에 대한 접근이 그렇게나 뒤집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최초의 녹음기술에 대한 설명후 오케스트라 등의 예시로서 설명되는 부분을 읽었을때, 라디오에서 20세기초 거장들의 음원(비록 그 음질은 형편없었으나)들을 들을때의 감동이 재현됬다. 그래 맞다. 적어도 '음악'에 있어서 그 과거를 완벽히 재현하며 붙들수 있다는건 전무후무한 엄청난 일이었다.

 세계대전 이전의 빅토리아 시대 후기를 가리켜 벨에포크(좋았던 시절)이라고 한다. 이 벨에포크 시절에는 공적이고 외적인 시간 속도가 빨라질뿐 아니라, 별개로서의 인간내면의 시간이 조망되기도 했다.

 

 공간에 대한 인식변화에 대해서도 마치 15세기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때 만큼의 사회정치적 충격을 가져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제국팽창의 정당성은 기독교나라들이 도색한 교리(땅끝까지 복음-문명-을 전파할 의무) 덕분에 편리하게 유지되고 있었으며, 그 점에 있어서 영국과 독일의 죄(罪)질과 양은 꼭 동일했다.

 과거에 다이너마이트가 그랬고, 이후의 핵기술이 그러하듯 이 시대의 과학역시 전쟁의 도구가 되었다. 비행기의 발달로 인해 경험치 못했던 "공중전"이라는 상당히 새롭고 극한의 공포를 수반한 전쟁의 서막이 올랐던 것이다.

 

 피카소의 공간과 대상을 동일시한 입체주의를 대입해 입체파 전쟁이라 이름붙인것, 그리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통제욕이 침몰시킨 타이타닉호의 상징적 직유가 흥미로웠다.

 

 

* 참고 : 1880~1883에 출생한 20세기 초 인물들.

피카소 / 스트라빈스키 / 루즈벨트 / 헬렌켈러 / 버지니아 울프 / 야스퍼스 / 코코 샤넬 / 무솔리니 / 케인즈 / 플레밍 / (우리나라 - 안중근& 신채호, 빨간머리앤&소공녀:20C초 출간되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