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내가 만난 14명째의 지젤 - ABT의 헤레라

아르미다a 2012. 7. 21. 01:23

 두둥~ 드디어, 역대 최고가라고, 너무 비싸다고 말이 많았던 ABT의 내한공연일!

사실, 가격보다는 ABT를 세계3대 발레단이라고 홍보하는게 훨씬 더 황당하지만 말이지.

막바지에 패키지 할인행사등을 열심히 하는것으로 보아 기대만큼 장사가 잘 안됬나싶기도 하다.

 

 헤레라 & 고메즈

 

 해적에서 귈나라역으로 봤던 헤레라, 백조의 호수에서 각각 로트바르트와 오데트(오딜)역으로 봤던 고메즈와 머피를 직접 본다는것만으로도 벅찼고 차이코프스키마저 제치고 발레음악중 가장 아름답다고 감히 말하고 싶은 드라마성 충만한 지젤음악! ㅡ프라임오케스트라라는 비교적 생소한 오케의 반주(지휘자는 은발의 외국인이었음)가 완벽하지만은 않았음에도 실연으로 들으니 훌륭하고 너무 멋졌다.

 

 많은 여성 발레팬들이 그렇듯 나또한 지젤이 가장 좋아하는 발레작품이기때문에 나름 종류대로 찾아서봤다.

전편을 다 본것은 영상물로 13종의 지젤을 보고, 실제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4번째의 지젤, 그녀는 팔로마 헤레라였다.

 헤레라와 지젤이라.... 헤레라는 로맨틱튀튀보다는 클래식튀튀가 적격인 역동적인 무용수라는 선입견이 조금 갸우뚱했으나 출연진 중 켄트, 레예즈, 고메즈, 코르네호, 머피 정도를 후보에 두고 가장 환상적인 스타들로 구성된 캐스팅을 고르다 금요일 저녁으로 선택. (늙지도 않는다는 켄트는 아무리 그래도 전성기가 지나서.... ^^ 켄트와 고메즈와 머피 캐스팅의 전날 공연도 평이 참 좋았다)

 헤레라가 만튼 시골처녀지젤은, 으음... 내가 본 지젤 중에 굳이 비교를 하자면 POB 퓌졸(푸욜?)의 지젤과 비슷했다. 많이 흡사하다라기 보다는 전형적인 지젤은 아니라는 뜻ㅎㅎ 퓌졸이 좀 기가 센 여자의 느낌이라면 헤레라는 명랑한 사내아이같은 느낌. 매드씬에서도 퓌졸과 헤레라의 해석, 표현이 비슷한편인듯. 파워풀(?)하게 실성한다. 점점 깊어지는 광기에서 어떤 무너져내리는듯한 격정이 느껴졌달까.

 

 1막에서 유난히 인상적이었던것은 ABT 고유의 특색이었다. 어쩜 그리도 알록달록한지. 머리색도 골고루 피부색도 골고루~ 신장(키)도 크고 작고 참 다양하더라, 누가 인종 다양한 미국발레단 아니랄까봐. 군무진중의 발레작품에서 자주 보기 힘든 까무잡잡(?)한 라틴계 발레리나가 눈에 띄었다. 하긴 두 주역부터가 아름다운 모카색 피부의 라틴계구나. 딴얘기로 빠지자면 피부색보다 훨씬더 눈에 띄는것은 동아시아계 발레리나다. 얼굴(머리)가 유난히 커서ㅠㅠ 로열이나 ABT 영상물을 볼때도 꼭 느꼈던 것인데 그 '상대적'으로 덜 예쁜 신체비율때문에 쬐~끔 거슬린다ㅜㅜ (패전트 파드되의 발레리나도 해당됬음)

 악명(?) 높은 ABT의 군무야 뭐, 앞자리에서 봐서 다리가 안맞는구나 싶었지 크게 거슬리진 않았다.  애초에 마음을 비우고 봤기에 심지어 기대보다 괜찮기까지했다. ^^ 시골축제인데 통일성이 강조되기 보다는 우왕좌왕 즐겁게 뛰노는(?)게 뭐 어떠랴.

 

 머피

 

 

  2막의 군무가 으음... 백조의 호수에서 봤던 그 군무를 연상시키며 다소 부족한 느낌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뭐 볼만했다. 영상으로 봤다면 ABT의 백조 군무를 볼때처럼 짜증이 조금 났을듯, 허나 군무가 한눈에 들어오지않는 앞자리에 앉아 실연을 본지라 괜찮았다. 게다가 미르타역의 머피가 훌륭했거든! 이 발레공연중 관객들이 너무나 감탄한 나머지 작은 숨소리고 '아아'하고 탄성을 낸것이 두번있었는데 그 중 한번이 머피가 파드부레로 등장하는 부분이었다. (나머지 한번은 고메즈의 2막 바리에이션부분 - 코레야만큼 화려하진않겠지만 기량이 대단했다. 아름다운 고메즈의 하반신 움직임을 보며 신이 빚은 인간의 몸자체가 예술임을 다시금 알게됨) 보통은 미르타도 지젤도 양손에 꽃을 들고 춤을 추는데, 미르타에게는 꽃이 달리지않은 나뭇가지가 주어진 연출이라 그 카리스마가 더욱 부각되었다.

 헤레라. 내가 본 지젤 중 1막에서 2막으로 넘어가며 가장 크게 변모한 연기였다. 1막에서는 심장이 약한 소녀치고 참 에너지가 넘치고, 턴을 할때마다 얼마나 힘있고 역동적인지 독특한 지젤이구나 했는데, 2막에서는 윌리가 된 그 특유의 여리고 슬픔이 묻어나는 순정파 지젤 캐릭터를 잘 보여줬다. 다른 윌리들과 달리 로맨틱튀튀 상의에 사선으로 장식을 달지않고 밋밋하게 만든 지젤의 의상이 꼭 어울렸다. 헤레라 덕분에 지젤 2막을 더욱더 사랑하게됬다.

 

 

 돈이 아깝지않은, 선택이 후회되지않았던 공연이었다. 다른 캐스팅으로 한번더 예매하지않은것을 후회하느냐 하면 뭐 그렇게까진 아니다. (비싸기도 하지만 주인공만 다르지 군무는 똑같잖아)

 오페라 공연을 열심히 볼때는 그렇게 다녔어도 세종문화회관이 예술의전당보다 훨씬 큰 공연장이라는걸 몰랐는데(항상 앞줄 중앙좌석에 앉기도했고, 내가 둔감하기도하고) 지난달 드라마발레인 카멜리아의 여인을 어처구니없게 큰 공연장으로 올린것에 충격을 받았는지(지금 생각해보니 꼭 강수진때문만은 아니고 공연장이 너무 커서 감동을 느끼기가 힘들었던것같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 너무나 작아보여 토월극장으로 잘못온것 아닌지 착각할뻔했다. 또, 오페라공연을 볼때는 실연의 우월성을 제대로 체감하지못하고 영화관 메트오페라로 방향을 틀었는데, 청각적인 오페라에 비해 더없이 시각적인 발레공연은 영상물이 주지못하는 실제공연의 매력이 대단하다. (하긴, 오페라는 기라성같은 세계적 스타-전성기가 지난 사람말고-의 실연을 본적이 있어야말이지@.@) 감동이 살아숨쉰다. 물론 기준미달의 공연은 철저히 열외다.

 백조는 몰라도 지젤이라면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이 공연할때마다 꼬박꼬박 챙겨보러 다녀야겠다.

 

 

 

 


 

 

 

 # 지젤 14종 간략 비교

(지젤은 특별히 재해석한 경우가 드물지만, 조금씩은 다 각각 다르다. 힐라리온이 지젤을 위한 선물로 꽃을 들고 등장하느냐 사냥한 꿩을 들고오느냐, 패전트파드되를 4인무, 6인무, 8인무 등으로 구성하기도 하고, 패전트파드되나 지젤 바리에이션이 그냥 자기들끼리 축제를 즐기는 경우도 있고 바틸다를 위한 여흥으로 설정되기도 한다. 특히 1막의 마지막장면에서 알브레히트가 지젤을 끝까지 안고있느냐, 비겁하게 얼른 도망가느냐, 지젤의 엄마가 죽은 지젤을 끌어안고 알브레히트를 밀쳐내느냐 멀찍이서 울고만있느냐 등등)

 

1.

라스칼라 1996, 페리

 ㅡ 코조가루의 지젤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젤이다. 페리의 유연한 몸놀림이 너무 예쁘고 매드씬은 단연 최고다. 패전트 파드되에 풋풋한 볼레가 등장한다. 2막첫부분에서 팔을 앞으로 뻗은채 아래위로 흔들며 힐라리온을 겁주는 윌리의 모습은 섬뜩하다.

2.

라스칼라, 자하로바 & 볼레

 ㅡ 자하로바는 로맨틱튀튀가 안어울린다. 1막 첫부분인 플라워씬에서 볼레와 자하로바의 밀당장면이 워낙 선남선녀의 연애스러워 행복한 느낌을 받았음. 볼레의 2막 바리에이션(특히 앙트르샤)은 일품이다.

3.

볼쇼이 1990, 베스메르트노바

 ㅡ 많은 발레팬들이 높이 평가하던데, 여주인공이 쉰살의 늙은 발레리나라 난 싫었다. 70년대의 베스메르트노바 주역의 지젤을 유투브에서 조각으로 봤는데 그것은 괜찮은듯.

4.

1958, 네리나 & 파데예체프

 ㅡ 방송용 60분짜리영상이라 패전트파드되는 물론 미르타의 춤도 없는 흑백의 지젤이다. 매드씬에서 지젤이 어떤 입체감보다는 정신병원의 환자같은 광기로 보였다. 민망하지않도록 알브레히트의 상의가 골반쯤까지 내려온것은 맘에 들었다.

5.

ABT, 프라치

 ㅡ 90분짜리 영상이며 실황이 아니라 영화식으로 제작되었다. 1막 매드씬에서 유일하게 단정한 머리로 (풀어헤치지않고) 실성장면을 연기한것이 특이함. 2막에서 프라치의 앙트르샤가 워낙 탁월해 특수효과가 아닌가 의심하게만들정도다.

6.

로열, 코조가루

 ㅡ 코조가루의 사랑스러움, 2막에서 여느 지젤과는 차별화된 사랑의 의지를 선보이는것, 한많은 처녀귀신답게 윌리들의 치마단이 뾰족뾰족 톱날같은것. 모두 다 맘에 든다. 지젤중의 으뜸을 꼽으라면 페리와 함께 코조가루라 하고싶다.

7.

DNB, 치간코바

 ㅡ 1막의 지젤은 너무나 밋밋했다. 1막에서부터 지젤은 이미 윌리인듯. 2막은 다행히 괜찮았다. 패전트 파드되 대신 4인무로 연출한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8.

ABT, 바리시니코프 & 마카로바

 ㅡ 그 훌륭한 마카로바가 바리시니코프의 기량과 출중한 감정연기에 가려 잘 안보였을정도였다.

9.

마린스키 2008, 세미오노바

 ㅡ 세미오노바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지젤이어서 너무 좋았다. 실황 90분짜리였는데 패전트파드되가 없었다.

10.

볼쇼이 1998, 룬키나

 ㅡ 내가 본 지젤 중 누구와도 견줄수없도록 청초한 지젤이었다. 하긴 룬키나가 18살이니. 어쩜 룬키나는 아라베스크, 지젤라인이 저리도 아름다울수 있을까. 1막에서 다른 지젤과 달리 힐라리온역에 비중을 주어 연출한게 마음에 꼭 드는 작품이다.

11.

볼쇼이 2011, 룬키나

 ㅡ 열여덟 어린소녀였던 룬키나는 서른을 넘겨 젖살이 쏙 빠져서 얼굴이 많이 변했다. 2막의 춤은 더 완벽해져있다. 알라쉬의 미르타가 너무나 맘에 듦. 많은 발레팬들이 룬키나를 '이 시대 최고의 지젤' 이라고 하는 것 같다.

12.

POB 2006, 퓌졸

 ㅡ 독특한 지젤인 퓌졸만 빼고 다 좋았다(퓌졸이 싫은것까진 아니고). 군무도 훌륭하고 전체적인 연출과 짜임도 맘에든다.

13. 마츠에크의 지젤 ㅡ 완전히 다른 버젼의 지젤. 음악빼고 다 싫었다.

14. ABT 헤레라의 지젤 ㅡ 괜찮음. 이 포스트에 길~게 리뷰해놓았다.

(참고 : 지젤을 비교해놓은 블로그 ㅡ> http://psunh512.blog.me/130106429476 위 1,2,6,7번 해당)

 

p.s. 오페라반주 경험이 많아서일까, 라스칼라의 오케반주는 정말 최고다!!

 

 

 

 ↓ 아래 동영상은 ABT의 지젤을 맛볼수 있는 영화 속 발레 장면이다~ (스무살쯤의 페리와 켄트를 볼수있다)

 줄리켄트 주연의 영화 [지젤] 中

바리시니코프 & 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