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영화, 책

지루함의 철학

아르미다a 2009. 6. 10. 12:45

「지루함의 철학 Kjedsomhetens filosofi」
-- Lars Fr. H. Svendsen


... 그건 마치 내가 지혜의 잔을 들어마셨던 것이 아니라 그 잔속에 내가 빠져 버렸던 듯한 기분이었다. ...

... 지루함이란 것이 온갖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려진다고 하더라도, 실은 그저 인생에 대한 한가지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

... 할 일이 없는 게으름의 상태와 마찬가지로 힘든 일도 지루할수있다. ... 긴 논문을 쓸 때처럼 그렇게 지독한 지루함에 짓눌려 본 적이 없었다. 그 일이 너무나도 지루한 나머지 그 일을 어떻게든 계속하기위해 내가 가진 모든 의지력을 총동원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

... 그러나 지루함을 경험한다는 건 한 조각 현실을 경험한다는 걸 뜻한다. 지루함에 직접 듣는 해독제를 찾으려고만 하지말고 그보다는 지루함을 붙들어 상대를 하는게, 그러니까 지루함 속에서 일종의 의미 같은걸 찾아내는게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완전히 지루함에 맞선다는것 또는 다른 어떤 기분을 결정한다는건 불가능하다. ...

... 외로움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것이 바로 자기중심주의다. 이 자기중심주의에 빠지면 우리는 또 제 자신이 인정받는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얽매이게 된다. 제 자아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늘 다른 사람들의 눈에 저를 비추어 보는 일에 매달리는 탓에 정작 제 자신을 위한 시간이 없다. 그래서 제 자신에 대한 관계에서 안정을 찾을 수 없고 그래서 스러질듯 작은 모습의 자아만 보게 되는 탓에 제 자아의 바깥모습을 어마어마한 크기로 부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거대한 제 자신과 발을 맞춘다는게 갈수록 자꾸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 역설이라면 자기중심주의자는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사람보다 더 외롭다는 사실이다. 자기중심주의자는 늘 다른 사람들 속에서 저만 보지만, 외로운 사람은 다른 참다운 사람들에게 열려있고 그들을 위한 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주의자는 늘 '내가 된다는 건 쉬운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만 할 수 있지만, 외로운 사람은 누군가가 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에 이를수 있다. ...

... 외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외로움에 대해 어떤 자세, 어떤 태도를 갖느냐 하는 것이다. ... 외로움에는 삶을 끊임없이 벗어나 사라져 버리는 사물과 다른 사람에게 맞추는게 아니라 제 자신 안에서 쉴 수 있는 가능성이 들어있다. ...

... 상실감이란 어쩌면 양심의 가책, 제 삶의 본질에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느낌과 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루함이란 내가 내 삶을 저버렸다는걸 나타내는 표시인지도 모른다. ...

... 외로움이 사람의 보편 특징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사적인 것이다. 외로움은 오직 나만의 문제이고 내 자신이 외로움일 때도 많다. ... 지루함도 마찬가지로 내 지루함이다. 그 지루함에 대한 책임이 내게 있는 것이다. ...

... 삶에서 아픔을 포기한다는 건 자신을 사람답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우리 존재를 정당화시키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

...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문제들과 더불어 사는 것이지 문제들을 위해 사는게 아니란 사실이다. ...

... 얼마든지 지루함과 더불어 살아갈 수도 있다. ... 그렇다면 예술, 사랑 또는 신에 대한 관계와 같이 지루함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흔히 권하는 치료법들은 어떤가? 이러한 것들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위안을 삼느라 추구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지루함을 피해 달아나는 한낱 수단으로 낮춰 볼 이유는 없다. ...

... 우리가 가진 형이상학 차원의 슬픔ㅡ이 꼭지의 앞쪽에서 이야기를 했던 상실의 경험과 같은ㅡ의 대부분은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슬픔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 이 어린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세계에 대한 아쉬움으로 보는것, 다시 말하자면 어린 시절과 연결된 상실의 경험이 세계 상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

... 그러나 어린 시절은 이제 잃어버려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차라리 성숙함, 어른스러움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마땅하다. ...

... 제 스스로의 성숙은 '어린이가 놀이를 하면서 가졌던 진지함을 되찾는 것'의 성패에 달렸다고 주장한다. ... 삶을 탐미의 놀이로 만들 줄 알고 쉼없이 제 스스로를 확인할 줄 아는, 그런 커다란 어린이. 성숙이란 그러니까 하나의 자아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

... '아모르 파티(amor fati)' ... 그것은 다름아니라 한편으로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그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다. ...

... 성숙에는 변함없이 지속됨이 요구된다. ... 결국 한계를 넘어서지 않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한계들을 밝혀 확인하는 일인 셈이다. ...

...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인생이 어린 시절의 마술사에게 매달려있을 수 없는 것이란 사실과 인생살이가 어느 정도는 지루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며 아울러 인생은 그럼에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걸 말한다.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건 물론 아니다. 다만 문제가 달라지는 것 뿐이다. ...

... 지루함은 어떻게 피해 갈 수 없는 엄연한 사실로, 그러니까 자기 삶의 중력처럼 그렇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




============================================================

 작가인 Lars Fr. H. Svendsen.
 노르웨이의 철학교수다. 왜 그랬는지 지레짐작 노교수려니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 ... 이제 내 나이 서른 줄을 앞두었으면서도 ... ' 라는 문장이 나왔다. 책 앞뒤를 넘겨 찾아보니 이 책을 썼을 당시 29살의 나이였다.
 놀라웠고, '아 그랬었구나. 그래서 더 가깝게 느껴졌구나,' 생각했다. 20대 후반이 아닌, 중년을 훨씬 넘긴 사람이 썼다면 뭔가 다른 색깔의 책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리고.. 이 책의 주제, 제목 역시 20대 후반의 고뇌(?)답지않나 싶었다.

 

 이 책은 철학서지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쓰였기에 어렵지않게 쉽게 쉽게 쓰였다. (하지만 나에겐 책의 네부분 중에서 두번째, 세번째 부분은 좀 어려웠다.) 세번째 부분까지 어렵게 읽어나간후 마지막 부분을 읽는데, 반전같은 내용이 매력적이었다.
 세번째 부분에서 하이데거의 지루함에 대한 현상학에 대해 차근차근 구체적으로 친절히 설명을 해주길래 하이데거와 궤도를 같이하여 해답을 내어간다고 느꼈었다.

 

 하이데거처럼 지루함을 대단히 깊이있고 심오한, 삶의 본질을 꿰뚫는, 철학의 대단한 재목중의 하나로 받아들여 승화시키는 식의 '재미없는', 역시 철학책이구나 하고 이 책을 판단하려던 차에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한 앞부분에서 느꼈던 감동이 배가되어 느껴졌다. 이 책을 처음 집어들어 읽기시작할때 기대했던 만큼, 아니 조금 더 그 이상을 주었다.

 

 유럽어와는 달리 한국어에는 철학적인 내용들을 담을 만한 들어맞는 단어들이 참 많이 부족하다는 설명이 역자주에 있었다. '지루함'이라는 세글자가 충분치 못하다는 느낌이지만, Kjedsomhetens(지루함)은 결국 실존주의, 허무주의와 같은 선상에 있다.

 

 고등학생때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읽었을때, 그때 그 기분과 같은 강도의 기분을 느꼈다.
 실존주의 문학에서 까뮈는 감성적이고, 사르트르는 이성적이다 라고 해서 사르트르의 '구토'등도 읽어 봤으나 깊게 이해가 닿지 않아서 그랬는지 크게 마음에 오지않았었는데, 이 책이 대신 이성적인 실존주의의 맛을 보여주지않았나 싶다.
 고등학생때 '이방인'을 읽었을때는 이해와 공감이라기 보다는 신선한 충격과 해방감, 벅차오름 이런것들을 느꼈었는데,

 

 사회인으로 변해서 익숙해지기 시작한 지금, 이제 막 지루함에 멍하니 한숨을 쉴까하는 이때에, 이 책을 읽고나니 마치 상당한 지원을 얻은 느낌이다. 내가 이 책에 공감을 한것임에도 마치 이 책이 나를 이해해주고 공감해준것같은 느낌, 이런 걸 작가와 독자와의 대화라고 하는걸까.

 내가 원하는, 나에게 가능한 해답ㅡ여기서는 겸손하게도 ' ... 대단한 해결책도 아니고 애초에 해답이란게 없다 ... ' 고 이야기하지만ㅡ을 주어서인가보다. 대단한 해결책이나 해답이란게 있진 않다는 말 역시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 않는가.

 이 책에서 제시해 준 것처럼,
 필연적인 문제들을 내 삶의 중력처럼 더불어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뿐이다. 

 예수님이 "너희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듯. 

 

 '내 삶의 중력처럼' 이라는 문구가 빛난다.

'드라마, 영화,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픔이여 안녕  (0) 2009.06.17
Milan Kundera  (0) 2009.06.10
키에르케고르의 기도  (0) 2009.06.10
XOXO ㅡ 블레어의 도로타  (0) 2009.06.10
기로(岐路)의 엑스맨  (0) 2009.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