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투란도트', 그 무모한 사랑

아르미다a 2009. 10. 19. 15:38

오페라 투란도트. '네순도르마'와 '시뇨레 아스콜따' 정도의 아리아는 좋지만 푸치니의 유작인 이 오페라의 전반적인 음악을 난 좋아하지않는다. 푸치니스럽지않게(?) 너무 합창이 많이 나오고 오케스트라는 거창하며 아리아들은 전부 너무 절규한다.

 

 

 연출, 좋았다. 외국연출오페라들은 확실히 그 색깔이 다르다. 군중들에게 베트남 복장을 입히고 합창단의 어린소녀들은 인도스러운 복장을 한것은 일부러 그러했음일까. 무대위 합창단까지 아우르는 역동적인 외국 지휘자의 모습이 현장감을 더했다.

 핑, 퐁, 팡. 셋다 이태리성악가가 열연했는데 이 세사람은 주연으로 착각될만큼 너무나 빛나는 조연이었다. 투란도트의 아버지인 황제. 무대중 너무 뒷쪽으로 올라가 앉아서 였을까 성량이 작은것이었을까 조금 아쉬웠다. 류 역을 맡은 이태리 소프라노도 류의 지고지순하고 절절한 심정을 표현해내기엔 뭔가 부족함이 있었다. 칼리프왕자를 연기한 테너 이정원은 크고 힘찬소리에 극초반부터 과연 네순도르마를 어찌부르려나 하고 기대하게만들었다.

 

 투란도트, 심장이 얼어붙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그녀는 누구였을까. 극이 끝난다음에도 어떤 여자일까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몇세기전 선대의 공주가 환생한 인물일까. 사납고 고압적으로 아리아를 부르다가도 아버지황제에게 사정하는 모습과 끝부분에 칼리프를 받아들이는 장면에서는 그녀도 그냥 작은새같은 여인에 불과함이 느껴지는 연기였다. 이번 투란도트에서는 숨겨진 연약함이 부끄러워 기를쓰고 강한척하는 얼음공주를 만났다.

 

 칼리프왕자. 전형적인 영웅남의 모습일까. 그의 심장에는 눈을 통해 들어온 아름다움으로 인해 거역할수 없는 독기가 퍼져버렸다. 무모한 사랑. 죽음을 각오해야하기에 손에넣기 불가능하기에 더욱더 간절해지는 아이러니. 그의 심장은 얼어붙고 머리속은 마비되어 아버지의 간곡한 사정도, 류의 간절한 순정도 감지할수가 없다. 심지어 그를 위한 류의 희생적 죽음앞에서도 그 그 마력은 풀리지않는다. 투란도트의 완고함과 냉혹함을 무장해제시켜버릴정도의 대단한 그 류의 사랑조차 남자의 무모한 사랑을 걷잡을수 없다.

 

 류. 이 오페라의 주인공은 '류'다. 푸치니의 전형적인 여성상이며 비극적 죽음을 맞는 인물. 베르디의 일트로바토레의 주인공은 정작 아주체나인것처럼, 베르디의 아이다에서 비극적 여인은 아이다가 아니라 암네리스 인것처럼, 투란도트의 진짜 여주인공인 류.

 왕궁에서 칼리프왕자가 그저 의미없이, 봄바람처럼 가볍게 보내준 한번의 미소때문에 일방적인 순정적 사랑을 쏟게된다. 죽음의 길로 부디 가지말아달라고 울면서 호소하는 그녀에게 그저 아버지를 잘 부탁한다는 말뿐인 그 남자에게...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사랑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 불가해한 특성때문에 더욱더 빠져들 수 밖에없는것이 아닌가.

 그녀의 "남몰래하는 고백할 수 없는" 사랑이 안타까웠다. 열정보다는 아가페적 사랑에 가까운 그녀의 연정은 투란도트에게 칼라프와의 사랑을 완성하기를 유언처럼 남기고 사그라든다.